블로그 | 2024.07.30 | #인터뷰 #자원순환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제로웨이스트샵 계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망원동 알맹상점을 소개합니다.
알맹상점은 알짜(알맹이를 쫓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의 베이스켐프이자, 용기만 챙겨가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뭔가 평범하지 않죠?
ep.5 알맹상점
©수퍼빈
알맹상점과 수리상점 곰손의 공동 대표이자 10년 차 쓰레기 덕후, 금자 님을 만나고 왔어요.
지난 5월, 수퍼빈 크루들이 쓰레기투어에 참여하며 운영자로 계신 금자 님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서로의 공간인 아이엠팩토리와 알맹상점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꿈꾸는 알짜들의 사랑방, 알맹상점의 이야기입니다.
©수퍼빈
"환경덕질 10년차, 쓰레기 없는 일상을 고민합니다."
알맹상점 공동대표, 금자
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금) 저는 망원동을 어슬렁거리는 10년 차 쓰레기 덕후 고금숙(금자)이라고 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샵이자 리필 스테이션 알맹상점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요. 동시에 알맹상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친환경 커뮤니티 수리상점 곰손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주중에는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 행동 단체의 환경 활동가로도 일합니다.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을 찾아내고 감시해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하는 환경단체에요.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소화하다 보니 평소에 역할 스위치가 자주 되는데요. 쉽게 정리하자면 동네에서는 사장 노릇을 하고 다른 곳에 가서는 월급을 받는 활동가로 지내고 있습니다.(웃음) 결국 이걸 다 묶는 활동들은 ‘환경 덕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수) 인터뷰를 준비하며 사전 조사를 하던 중, 여러 행사에서 '금자'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신 것을 보고 본명이신 줄 알았어요. 제가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금) 편하게 금자 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실제로 제 이름에 ‘금’ 자가 들어가기도 하고, 불친절한 금자 씨 아시죠? (웃음)
제가 일회용 물건을 쓰는 사람들한테 불친절해서 영화 불친절한 금자 씨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 ‘금자’라는 별칭을 쓰고 있어요.
별칭은 대학생 시절 활동했던 페미니즘 교지부 활동에 지었어요. 나이나 학년에 따른 편차 없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평등한 관계로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유대관계가 있는 언어 체계에 익숙해서 수평적인 분위를 조성하기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실명을 쓰면 ‘00 언니’ 이렇게 유사 가족 관계로 모이게 되고 선후배와 나이가 5살, 10살씩 차이 나면 반말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구성원 모두 다 별칭을 썼어요.
저는 ‘금’이 들어간 이름 중 사람들이 부르기 쉬운 이름이 무엇일지 생각하다 금자가 되었어요. 별칭을 정하고 나니 딱딱한 ‘금숙 언니’가 아닌 "금자씨~ 금자님~" 이렇게 친근하게 부르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쭉 별칭을 사용하고 있어요.
TMI. 할아버지가 사주를 보셨는데 제 사주에 금이 없는 거예요. 실명인 고금숙은 그 점을 보강해서 지어주셨던 이름이에요. 그래서 별칭에서도 ‘금’을 살렸어요. (웃음)
©수퍼빈
수) ‘금자’가 꽤나 이유 있는 히스토리를 가진 별칭이었군요! 금자씨는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시나요?
금) 항상 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담당하는 일이 많은데 모두 직책만 있는 게 아니라 실무를 하고 있어요. 같이 사는 친구가 집에서도 일하는 걸 보며 이렇게 매일 일하다가 과로사 걸리겠다고도 말해요. 하지만 쓰레기 덕후이기 때문에, 일과 노동과 삶이 일치되고 있다 보니 저는 즐거워요. 좋아하는 걸 일로 삼았을 때의 장점이랄까요.(웃음)
수) 너무 바쁜 삶을 보내고 계시네요. 그럴수록 마음 챙김이 더욱 중요한데 휴식 시간은 어떻게 가지고 계시나요?
금) 별도로 시간을 따로 떼어 쉬기보다는, 제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며 일상을 보냅니다.
우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지속 가능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마음 챙김에 큰 도움이 되는데요. 자기 전에 친구들과 그날 있었던 일들,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이 큰 힘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상 속 행복을 느끼고, 스스로를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셋째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건강을 위해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해요. 최근에는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아침마다 상추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빨리 자라서 제가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망원동의 골목과 상점 ©사진작가 최성익
수) 망원동에서 지내온지 20년 차라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동네의 매력은 뭔지 궁금해요.
금) 망원동에는 작고 오래된 골목길과 다세대 주택이 많습니다. 아파트 단지 중심인 동네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여기는 차를 가지고 오면 오히려 굉장히 막히고 주차할 곳이 없어 불편해요. 신도시의 넓은 도로는 없지만 대신 구불구불하고 오래된 골목과 사람 냄새나는 전통시장이 있어요. 저는 이게 망원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걸어서 동네를 탐색하고 작고 오래된 혹은 새로 생긴 가게들, 주인장의 개성이 잔뜩 묻은 가게들을 보면 동네 돌아다니는 맛이 있어요. 한강과 가깝다는 것도 매력적이죠.
또 살아 숨 쉬는 전통 시장에 가면 관광객도 많지만, 쇼핑 카트를 끌고 나와 열무를 사서 김장을 하려는 할머니들도 많아요.
그다음 비건 식당이나 출판사, 시민단체 같은 곳들이 합정과 홍대, 망원에 많이 걸쳐있다 보니 대안적인 문화가 굉장히 활발합니다. 이 두 가지 문화가 섞여 같이 숨 쉬고 있는 게 망원동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망원동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걸 즐기려는 사람들이고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알맹상점이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3층에 있더라도 많이들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건물 3층에 있는 알맹상점 ©수퍼빈
©수퍼빈
수) 알맹상점은 어떻게 시작된 공간인지 궁금해요.
금) 망원동에 오래 살다 보니 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하게 됐어요. 시장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가지고 일상을 영위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오더라고요. 전통 시장에는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가 없기 때문에 일회용품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저처럼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장을 볼 때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알짜(알맹이를 쫓는 자)'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함께 '알맹 망원시장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었죠. 시장 입구에서 장바구니를 대여해 주는 캠페인을 열기도 했고, 다회용기를 쓰거나 장바구니를 쓰시는 분들에게 포장이 없는 알맹이 양파나 알맹이 선물을 드려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쓰레기 없는 장터와 일상을 고민하다가 알맹상점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알맹상점 내부 모습(측면) ©수퍼빈
알맹상점 내부 모습(정면) ©수퍼빈
알맹상점은 알짜들의 사심이 가득한 가게라고 할 수 있어요. 어디 가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용기에 화장품이나 세제를 리필할 수 없고, 계란을 제가 가지고 있는 계란 판에 다시 담아 구매할 수도 없잖아요. 하지만 알맹생점에서는 모두 가능합니다. 저는 이렇게 쓰레기 없이 알맹이만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5년 정도 알맹상점을 운영하다 보니 우산도 수리하고 아이폰도 수리하고, 물건을 오래오래 써서 쓰레기를 줄이는 일상생활 기술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어야겠다는 의견도 생겨났어요. 그렇게 알맹상점에서 5분 거리에 수리상점 곰손이 탄생했습니다. 모두 망원동을 배경으로 도모한 일이고 망원동 친구(알짜)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금자 님의 리필스테이션 이용 과정 안내 ©수퍼빈
수) 알맹이만 판매한다는 게 기존에는 없던 개념인데,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들려주시겠어요?
금) 제로웨이스트 환경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꿋꿋이 그 생태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했던 것이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자본이 부족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유통하려면 재고를 많이 들여야 하는데 저희처럼 영세한 제로웨이스트샵들은 조건을 갖추기가 어렵죠. 올리브영이나 이마트처럼 다양한 물건을 가지려면, 그만한 자본력과 영향력이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오프라인 가게에서 다양한 물건을 보고 싶어 하는데, 자본적 한계 때문에 다양한 물건을 구비하는 게 힘들었어요.
제로웨이스트가 아직 사회적으로 소수 관심사라서 자본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요. 또 국내에는 리필 스테이션 개념이 없어 화장품 회사들에 벌크로 된 화장품을 요청하면 대부분 거절당하기도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화장품을 벌크로 살 리 없다는 반응이었죠.
친환경 물건들은 대체로 비싸서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저렴하고 대중적인 물건을 찾으려고 해도 대부분 개별 비닐 포장이 되어있어요. 비닐 포장을 없애달라고 요청해도 소량 주문으로는 들어주지 않아요. 저희는 다이소처럼 다양하고 많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샵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큰 투자가 필요하긴 하지만요.
알맹상점의 제로웨이스트 상품들 ©수퍼빈
수) 금자님의 제로웨이스트 활동 시작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사람이 있나요?
금)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와 알짜들에게 영향을 받았어요.
저는 제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제 생활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어떤 물건을 쓸 건지, 이 물건들이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다음에는 어떻게 될 건지.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게 되었죠. 자연스레 환경 운동 중에도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들, 대안 물건들에 관심을 두게 됐고요.
하지만 제 룸메이트는 이런 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쭉 환경단체에서 계속 일을 해오며 제도적인 변화라든지 정책적 변화에 대한 기자회견 등의 일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사람들이 스며들듯 재미있게 실행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죠. 아이템은 '물건'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환경운동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내 룸메이트 같은 사람도 관심을 두고 재미있어하는 가게를 만들어보고싶다는 상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제로웨이스트의 모습을 라이프 스타일로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할 때 가장 영감을 많이 준 건 오히려 가장 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제 룸메이트예요. 저 친구가 재밌다고 하면 진짜 재밌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이디어를 가져가면 육식주의자지만 “야 이거 비건이라고? 맛있겠는데?”, “이거 리필해 볼 만한데?”, “이 물건 괜찮은데 재밌겠다.” 이런 말이 나오면 실행해 봐도 괜찮겠다고, 자체 평가가 통과돼요. 반면 “야 이건 안돼. 사람들이 이걸 하겠냐?”와 같은 솔직한 답변을 주기도 해요.(웃음) 정말 큰 영향을 줍니다.
알맹상점에서 판매 중인 물건들 ©수퍼빈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수 있는 낱개형 샤프심과 벌크형 로션 ©수퍼빈
수) 미래에 시도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막연해서 밖에 꺼내놓지 못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있나요?
금) 네!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알맹이 대신 장 봐주기가 있다면 어떨까?.”
저희 알맹상점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매하지 않아요. 직접 쓰레기를 가져오시거나 용기를 가져오신 분들이 스스로 리필하는데요. 요즘 대신 장보기 서비스 많이들 사용하시잖아요. 알맹상점의 물품뿐 아니라 근처인 망원시장까지 알맹이 장 보기의 서비스를 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샤프심 8개, 얼굴에 바를 로션 조금, 호박 1개가 필요해요.’ 이런 주문을 받아 소량씩 장을 봐주는데 이게 모두 일회용 포장재가 아닌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거죠. 그렇게 마포구 은평구 용산구 정도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 대신 장 보기를 하며, 전부 다회용 용기로만 장을 보는 서비스가 생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수) 요즘 방을 정리하면서 미니멀라이프를 시도하고 있는데, 비우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네요. 사용하는 물건의 개수를 줄이는 미니멀 라이프가 제로웨이스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금)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을 줄이려는 접근 방식이고, 제로웨이스트는 물건의 수를 줄이기보다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개념입니다. 일단,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을 적게 갖는다는 면에서 제로웨이스트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아무리 자원순환을 하더라도 결국 끝에는 폐기 쓰레기가 나와요. 아무리 알맹이만 산다 해도 물건의 끝단을 생각해 보면 결국은 재사용이 안 되는 물건들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제로 웨이스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결된 개념이지만, 미니멀 라이프가 제로 웨이스트를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물건을 줄이기 위해 새 정리 도구를 구입하거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때 오히려 쓰레기가 늘어날 수 있어요. 따라서 미니멀 라이프가 제로웨이스트로 이어지려면, 물건을 줄이고 새로운 물건 구매를 자제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결국, 자원 순환과 재활용을 해도 폐기물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는 제로웨이스트의 필수 조건은 맞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에요.
©수퍼빈
수) 개인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 명당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줄여야 할까요?
금) 개인이 개미 코딱지만큼이라도 쓰레기를 줄인다면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서울시의 경우, 2026년까지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새로운 소각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소각장을 새로 짓지 않으려면, 서울시민 한 명당 하루 100g 정도의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해요. 100g은 신라면 한 봉지의 약 85g 정도에 해당합니다. 세상에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마음가짐을 전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활동에 참여하며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 여론이 중요하므로, 투표를 통해 쓰레기 정책을 지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수) 한국 사람들의 재활용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금) 재활용 제도와 시민 수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기후 위기와 쓰레기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절대적으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한국의 재활용률은 독일에 이어 세계 2위이고,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나라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섞어 버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요. 망원시장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일반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한국은 빠르게 제도를 받아들이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데는 성숙도가 부족해요. 우리는 당연하게 분리배출을 하긴 하지만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잔재물로 버려지거나 매립장으로 갑니다. 제도를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일상에 안착시키고 모니터링, 단속,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이런 점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요.
프랑스의 수리권 운동 관련 사진
수) 국내에 꼭 도입되었으면 하는 외국의 좋은 정책 선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금) 프랑스의 '수리권 운동'이라는 법안을 들여오고 싶어요. 옷을 수선하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입니다. 새 옷을 사는 대신 기존 옷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죠. 이와 함께 패스트패션에 폐기물 분담금과 재활용 생산자 책임제를 적용해 가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들은 일회용 문화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사용을 촉진해요.
한국도 일회용품 규제와 재사용 장려 정책이 필요해요. 벌칙과 인센티브를 함께 제공해야 재사용 정책이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일회용 문화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제도의 지원 없이는 자원순환 문화를 보편적인 문화로 확산시키기 어려워요. 한국에서는 분리배출을 잘하면 자원순환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재활용은 이미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단계입니다.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자원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죠.
수) 다른 인터뷰에서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영상을 보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금) 기후 위기의 첫 번째 단계는 식량 위기에요. 현재 우리는 이미 식량 문제를 겪고 있어요.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가 가뭄 때문이라는 거 아세요? 스페인과 중동의 가뭄으로 인해 올리브유 가격이 많이 상승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상기후 문제로 농산물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했어요. 관련된 대표 사건으로 지난봄에 이슈 되었던 대파 논쟁이 있죠.
*대파 논쟁(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로 인해 대파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했고, 이는 식품 물가 상승과 연관되어 큰 논쟁거리가 되었음)
지금은 봄철이라 채소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 시점인데도 너무 비싸요. 양배추가 5천 원이나 하더라고요. 이는 단순히 농민이나 유통 업체의 문제가 아니에요.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 위기와 이상 기후입니다.
농산물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일상에 큰 영향을 받아요. 기후 위기를 먼 미래의 문제로 생각하거나 북극곰 이야기처럼 다루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기후 위기는 현재 우리의 현실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우리의 밥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기후 위기를 다른 세대의 문제처럼 여기는 것은 무책임하며, 미래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면,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영화, Don’t Look Up을 보는 걸 추천합니다.
영화 돈룩업 포스터
수) 요즘 금자 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금) 수리권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예전에는 리필 스테이션과 같은 리필 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는 동네에서 수리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과 관련된 일자리도 큰 관심사예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환경 활동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경제적 활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믿어요. 환경 문제가 경제 시스템과 융합되어야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건강하게 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에서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탈서울을 꿈꾸고 있어요. 수도권은 활기차고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이제는 지방에서 더 재미있는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하고 싶어요. 수도권에서 얻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지방에서 매력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수퍼빈
수) 빈칸을 자유롭게 채워주세요! "쓰레기는 _____(이)다."
금) 쓰레기는 살림이다.
쓰레기를 되만져서 돌보면 새로운 물건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쓰레기가 살아나는 일’, ‘살림(Revival)’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수퍼빈과 알맹상점의 닮은 부분이 있을까요?
죽어가는(쓰레기가 되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노력한다는 부분이 닮은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이 오래되고 낡아서 버려지고 쓰임이 다 한 물건들을 다시 재생시키는, 살리는 과정이잖아요. 결국 수퍼빈이나 알맹상점이나 물건을 살리는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저희는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아직 알맹상점을 모르시는 분들께 보내는 메시지 한 마디 부탁해요!
금)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알맹상점은 알맹이만 리필할 수 있는 가게에요. 제로웨이스트의 다이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직접 방문해 보세요. 정말 재미있답니다~
금자 님과 인터뷰를 진행한 수퍼빈 크루 ©수퍼빈